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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예술지식] [문화상식] 보라색의 발견! 왕족의 색을 모두의 색으로 최초의 화학염료는? 알아두면 좋을 상식

예술가S 2019. 6. 19. 09:58

다양한 색이 난무하다 못해 넘치는 현대에서 우리는 색깔이 많이 없던 시절의 모습은 잘 상상하지 못한다. 대량 생산된 색깔이 전반적인 생활에 들어온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런던의 가정 실험실에서 일하는 아마추어 18세 화학자의 실수 덕분이다. 1856년 윌리엄 퍼킨 경이 실험중 우연히 진홍색을 발견하고, 그 결과 최초의 아닐린 염료가 패션의 세계를 변화시켰다 게다가 음식에서부터 사진, 의학, 군사 연구까지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큰 발견은 우연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말라리아 치료제가 보라색으로

윌리엄 헨리 퍼킨

1856년 Royal College of Chemistry에서 공부하면서 그는 말라리아 치료에 도움을 주려고 했다. 그는 진하고 기름진 석탄 타르를 사용하여 인위적으로 퀴닌을 생산하려고 노력했는데, 당시에는 말라리아의 유일한 치료법이었으나 가격이 너무 비쌌다. 퍼킨의 실험은 우연히 밝은 진홍색 물질을 만들어냈다. 그가 그 물질을 더 섞자 그 물질은 검은색으로 변했다. 술로 닦아냈는데 그 색은 윤기 나는 자주색으로 변했고, 그는 실크 천 조각을 넣어 염색해 보았다. 이러한 현상은 현대 합성염료의 첫 번째 우발적인 사용이었다. 펌킨이 보라색을 발견하기 전까지  염료는 식물, 곤충, 광물과 같은 천연 원료에서 생산되었고 이 염료는 비싸고 쓰기 번거로웠으며 세탁이나 태양 노출 후 빠르게 퇴색했다. 따라서, 그전까지 색깔을 입는 것은 높은 경제적 지위의 명백한 상징이었다. 1850년대의 평균적인 사람은 일반적으로 둔한 베이지색과 갈색으로 덮여 있었다.


귀족의 색,  보라색

페니키아의 도시 티레(Tyre) 에서 나는 뿔고동으로 만든 색깔이라고 하여 티리안 퍼플 (Tyrian Purple)이라고 부른다.

특히 보라색은특별했다.  고대에서 티리안 퍼플을 얻는 방법은 단 하나, 바다 달팽이. 그만큼 염료는 구하기 어렵고 매혹적이었기 때문에 페니키아의 왕은 그것을 왕족의 색으로 간주했고,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3월의 이 데스에 티리안 퍼플을 염색한 로브를 입었다. 로마 제국이 해체되면서 그 염료는 사라졌다.


왕족의 색이 모두의 색으로

색에 많은 관심이없던 다른 화학자들과 퍼킨은 달랐다. 그는 그가 발명한 색을 모베인이라고 이름 짓고 곧 공장을 열었는데, 이 공장에서 그는 실크, 울, 면화를 염색하는 방법을 개발했고, 나중에는 칼리코와 종이를 개발했다. 처음에는 직물 제조업자들이 그의 새로운 방법에 대해 매우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이듬해 빅토리아 여왕은 딸의 결혼식에 보랏빛 색조의 드레스를 입었다.

윌리엄 헨리 퍼킨의 아닐린 염료로 염색한 실크 드레스.

1859년 영국 저널 펀치가 신랄하게 "The Mauve Measles(보라색 홍역)"이라고 비판했으나 파리와 런던의 거리는 전 계급의 여성들이 가운, 리본, 팬, 장갑 및 슬리퍼를 모두 보라색으로 채웠다. 1860년이 되자 퍼킨의 염료는 암스테르담에서 홍콩까지 모든 곳에서 수요가 있었다.물론, 어떤 유행도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다른 화학자들은 퍼킨의 성공에 주목하고 그들만의 색조를 발명하기 시작했다. 2년 정도 지나자 모베인은 다른 색깔로 대체되었다. 맨체스터 갈색, 마르티우스 노란색, 니콜슨의 파란색. 1956년, 모베인 100주년이 되자 퍼킨의 합성물은 100가지 이상의 독특한 색깔을 만들어냈다.

퍼킨은 조용하게 살았지만 1906년, 모베인의 발견 50주년을 맞이하여 에드워드 왕은 퍼킨에게 기사 작위를 제의했는데, 그는 주저하다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그 이후 1907년 사망할 때까지 유명인사로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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