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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가 소개 ] 여름이면 생각나는 화가 John Singer Sargent (존 싱어 사전트) 아름답기만 한 아이들과 저녁무렵의 정원 그림. 사실은 작가가 이를 갈고 그렸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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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가 소개 ] 여름이면 생각나는 화가 John Singer Sargent (존 싱어 사전트) 아름답기만 한 아이들과 저녁무렵의 정원 그림. 사실은 작가가 이를 갈고 그렸다?

예술가S 2019. 6. 10. 11:40

안녕하세요 아티스트 S 입니다.

오늘은 존 싱어 사전트에 대해 글을 써봤습니다. 재밌게 읽으시길 바래요

 

 


존 싱어 사전트 (John Singer Sargent, 1856년 1월 12일 ~ 1925년 4월 14일) 

부유한 미국 가정에서 태어난 초상화가로 상류사회를 주로 그렸다. 그는 개인 미술교육을 받았고, 이를 통해 유럽 미술을 접했다. 스페인 궁실 화가인 벨라스케스에 영향을 받았다. 대표작 '마담 X'가 있다.

초상화가라고 많이 알려져 있긴 하지만 다른 작업도 굉장히 많이 남겼다.


[Carnation, Lily, Lily, Rose]

난 여름이라 하면 여러 화가와 같이 존 싱어 사전트가 떠오른다.  아마도 이 그림 때문인 것 같다.

Carnation, Lily, Lily, Rose 1885-86 Oil on canvas, 174 x 154 cm Tate Gallery, London

카네이션, 백합, 백합, 장미라는 제목의 그림이라니... 덥지도 춥지도 않은 저녁무렵, 빛이 몸을 감추기 시작할 때  풀내음과 꽃의 향기가 가득 차서 향기가 진동하는 정원. 순수한 아이 둘이 등불을 들고 물러간 빛을 대신하는 주변 환경의 표현이 기막히게 탁월하다. 세밀화는 아니니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작품을 실제로 보면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174x153.8cm의 큰 크기에 빼곡히 나타나는 순수함에 압도 당하고 만다. 이 작품만 보아도 그의 탁월한 색채 감각이 전통적인 형식에서 벗어난 인상파적 기법, 색채로 영국과 미국의 인상주의 화풍 확립을 하였다는 대단한 설명에 그저 절로 고개 끄덕이게 하는 대작이다. 나는 그의 억지스럽지 않은 색감을 무척좋아한다.르누아르를 떠 올릴 수도 있겠지만 르누아 루가 꿈 그 자체라 하면 존 싱어 서전트는 환상의 구체화라고 해야 할까. 내 느낌은 그렇다. 하지만 이 그림은 철저한 예술적인 지식의 집대성이라 할만하다.화가는 매일 낮이 밤으로 바뀔 무렵 미술 도구를 챙겨 야외에 나갔고 매일 관찰할 수 있는 최고의 빛을 재현하려 했다. 그사이에 여름은 가을로 변하고 꽃은 다 시들어 조화로 대체되었을 정도로 치열하게 그는 그림을 그렸다. 원래는 직사각형이었던 그림도 고심 끝에 왼편을 잘라 정사각형이 되었다.

그는 왜 이리 집요하게 이 그림에 매달렸을까?

카네이션 백합,백합, 장미는 서전트에게도 의미가 큰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영국은 초상화의 전통이 깊은 나라이며  마담 X의  논란으로 인해  본인에대한 미학적, 도덕적인 비판으로 도망치듯 온 쫓겨가듯 떠난 영국에서 데뷔한 작품이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그렸던 열정적인 스페인 무희나 화려한 백작 부인들과 달리 평범한 꼬마들을 작업에 내세운 것도 작가인 서전트 자신의 도덕적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아녔을까?
이렇게 치열하게 그려낸 그림은 영국의 자랑인 테이트 갤러리에 소장되었고, 화가도 영국 화단의 자랑스러운 일원이 되었다.


[마담 X 논란?]

: 논란의 중심에서 대표작이 되기까지 존 싱어 사전트의 미운 손가락. madame x

Madame Pierre Gautreau :마담 삐에흐 고뛔흐

뉴욕메트로 폴리탄의 서전트관에 있는 마담엑스

지금 보면 우아하고 아름답기만 한 초상화 

 얼굴은 윤곽이 잡혀있으며, 긴 코를 따라  보는 사람의 시선을 그림 밖으로 비스듬히 이끌고 있다. 오늘날 이 그림은 비싸고 잘 만들어진 검은  드레스로 인해 입은 도자기같이 하얀 피부가 더욱 도드라져 우아한 귀족 여성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은 1884 년의  Virginie Amélie Avegno Gautreau와 Paris Salon에서의 초상화의 데뷔 때의 격한 반응과 완전히 위배된다. 대중은 분개하였고 서전트는 그 나라에서 쫓겨가듯이 떠났으며 모델은 사회에서 매장되었다. 당시 프랑스 사교계 최고의 미인으로 칭송받던 마담 삐에르 고뛔흐. 서전트는 그녀의 아름다움에 압도당했다. 초상화 작업은 마담의 여름 별장에서 이루어졌으며 완성작 전에 그린 스케치만 해도 서른 점이나 된다.  전문 모델이 아니었던 그녀는 서전트와 호흡을 맞추어가며 점점 서전트가 원하는 모델의 포즈를 가지게 된다. 

수정전의 마담 엑스, 원본은 지금과는 다르다?

마담X의 원본 그녀의 오른쪽 어깨끈이 내려간 것이 보인다.

수많은 에스키스와 여러 회화를 시도한 후에, 서전트는 1884 년 살롱에 그의 그림을 내걸었다. 모델의 사생활을 위해 마담 X라고 명명한 서전트 하지만 파리의 사교계에서 워낙 유명했던 그녀이기게 대중들은 누구누구의 마누라라며 수군댔다. 관중은 어깨에 매달려있는 끈과 노출된 가슴팍을 드러낸 마담 Gautreau에 대해 성적으로 음란하다며 분개했다. 파리의 유행에 밝은 시민들은  모델의 드러난 살뿐만 아니라 유령 같은 피부색도 비판했다. 대중은 그녀가 피부를 밝게 하기 위해 비소를 섭취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1884년 서전트에 대한 평론에서 모델의 포즈는 부도덕하며  검은 드레스 또한 극악하다.라고 평가했다.(장례식에서 입는 색) 이러한 그림의 특징들은 요사스러우며 자연스러움을 완전히 잃어버렸다고도 비난했으며 관객들은 흘러내린 어깨끈에 충격을 받았다. 다 벗은 것보다도 음란한 그림이라고 대중은 생각한 것이다.

결국 마담의 어머니는 분개하여 서전트에게 전시를 중지할 것을 요청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내 딸이 천박한 창녀처럼 묘사되었다며 서전트에게 말 그대로 따라다니며 항의했고 서전트는 살롱에 그림을 고치겠다고 내려달라 요청하였지만 살롱의 전통이라는 이유로 무시되었다.(아마 살롱도 이런 유명세를 즐기지 않았을까?) 전시가 끝나자마자 서전트는 그림을 고쳤지만 대중들은 서전트에 대한 비난을 멈추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그림도 어색한 인체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사교계의 여성을 그려 명성을 쌓아가던 서전트는 한순간에 창녀를 그리는 작가로 변모된 것이다.

이 일로 서전트와 모델은 파리를 떠나게 된다. 


쫓기듯 프랑스에서 떠나 영국에서 명성을 되찾기 위해 치열하게 그렸던 그림.

이제 처음의 아이들과 정원 그림이 어떻게 보이시나요.  마냥 행복하게 보이시나요?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도 있지만, 이경우에는 뒷이야기를 생각하지 않고 그림만을 감상하는 게 좋은 선택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더욱 흥미롭게 볼 수도 있겠죠. 이런 게 미술의 뒷배경을 아는 재미 아닐까요?

옛날의 도덕적 잣대와  현대의 인식은 얼마나 달라졌나요. 지금의 기준이  나중까지의 기준이 되기는 힘들 것 같지만 그 와중에 서전트의 마담 X를 보아하니... 예술은 영원할 것 같네요.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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